우남 선생의 손자인 이상기 씨는 “우남 이원철 박사는 한국의 천문과 기상에 관련된 교육과 국가업무의 기틀을 세우신 분이다. 우남 선생을 최초의 이학박사로 만든 것은 바로 별자리이다. 당시 박사학위논문은 ‘독수리자리 에타 별’에 대한 것으로서 당시의 천문학계에서 논란이 일던 맥동변광성에 대한 것으로 미국 천문학회계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고인의 업적을 전했다.
집행위원장을 맡은 구리문화원 이병탁 부원장은 “선생은 식민지의 설움을 겪던 우리 민족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준 인물이었다. 미국에서 서양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구 성과를 거둔 사실은 민족의 자랑거리였다. 선생의 연구는 안타깝게도 박사학위에서 그쳤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연구하던 천문학에 대한 장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 대신 교육을 통해 학문적인 열정을 쏟아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박사의 업적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6년 4월 16일이다. 국제천문연맹(IAU) 산하 소행성센터(MPC)는 2002DB1이라는 임시번호만 있던 한 소행성에 대해 정식명칭을 승인했다. 이 소행성의 새로운 이름이 이원철(Leewonchul)이라 명명했기 때문이다.